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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이적 엄마 여성학자 박혜란

우리나라 1세대 여성학자 박혜란

이적 엄마이자 작가로 불리는 할머니입니다.

자녀교육서를 쓰게 된 것 

막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노하우를 책으로 써보라는 제의가 많았다. 너무 공부보다 여유를 가지고 살자는 뜻을 모아 강연을 많이 했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라도 한국의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여론이 많았다. 일단 대학을 잘 가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경우가 한 해에 몇 백건이 있었다. 우리 제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자고 하다가, 막상 내가 아이들을 학교를 잘 보냈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모두 다 서울대를 나온 자녀들

이적 씨를 비롯하여 자녀들이 다 서울대에 갔다. 그러니 가족이 다 서울대 동문이다.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할 것 같다. 사람들이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고맙다. 내가 한 것보다 아이들이 잘해서 내가 칭찬을 받는 것이다. 나는 교육운동을 하며 마음껏 키우라고 하는데 막상 서울대를 애들이 다 가니 막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는 서울대 가지 말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와 나는 별개이니 너 가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자녀를 키울 때 많이 했던 이야기 

엄마는 너무 바빠서 너희들을 하나하나 챙겨줄 수 없으니 알아서 커달라고 했다. 직장에 다니다가 육아를 하면서 경력단절이 되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 이제는 내가 커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이를 키우며 내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고, 입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이적의 인터뷰 

어머니는 자율적으로 하신 것 같다. 비가 억수로 오는데 부모님들이 데리러 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안 오신 애들이 남으면 남은 애들은 같이 물놀이를 같이 했다. 어느 순간에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머니가 나이 마흔에 다시 경력을 시작하셨다. 여섯 시에 도시락을 싸시고 집안일하시고 대학원 공부를 하셨는데, 한편으로 멋있으면서도 체력적으로 지쳐가시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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